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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여행, 그리고 유럽에서 한 달 살기

유럽 열차여행-2(암스테르담-베를린-바르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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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테르담~베를린 국제열차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호텔(The Social Hub)에서 1박 후, 아침 일찍 N 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왔다. 중앙역 부근은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가 많이 널려있고 노숙자들이 곳곳에 보인다. 네덜란드는 대마 등 마약류가 공식 허가된 나라로 처음 맡아보는 조금은 역겨운 냄새가 중앙역  주변에서 조금씩 난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일출

- 암스테르담 중앙역 좀도둑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0637시 출발하는 독일 고속열차는 2시간 거리인 뒤스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로 환승해야 한다. 중앙역 플랫폼에 도착하니 0620시경 우리가 탈 열차가 조금 일찍 들어왔다. 사전 좌석지정을 하였기 때문에 자리를 찾아서 자석 위 선반에 나와 가족의 백팩 2개를 올리고 착석하였다. 그런데 5분 정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무심코 위를 보니 백팩이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깜짝 놀라 일어나 뒷자석을 찾아보니 몇 자리 뒤 좌석 안쪽에 가족의 백팩이 풀어헤쳐진 상태로 팽개쳐 있다. 확인해 보니 내외부 모든 지퍼가 열려 있고, 심지어 화장품 파우치까지 개방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현금이나 여권 등이 모두 휴대 가방에 있는지라 잊어버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족은 그간 약간의 현금을 백팩에 분산 보관하여 오다가, 호텔에서 출발 시 휴대 가방에 넣었다고 한다. 한숨을 돌리고 생각해 보니, 열차에 탑승 시 우리 뒤편에 모녀처럼 보이는 아시아계 여성 2명이 따라와 좌석을 확인하는 행동을 하면서, 우리 뒤쪽 좌석에 앉는 것을 인식하였었다. 그러나 그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뒤편 좌석에는 승객들도 없어 좌석에 앉아 짐을 선반에 올리는 척하면서 조용히 우리의 백팩을 내려 뒤져본 것 같았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열차의 출발역이라 열차가 일찍 플랫폼에 들어오고, 승객들이 좌석확인 등 어수선한 상황을 노린 좀도둑들의 수법으로 보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주변에는 좀도둑이 많다는 여행후기를 읽어 본 적은 있으나, 실제로 당해보니 황당하였다. 유럽의 열차 출발역에서 승차 시는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 황당한 독일의 열차 운행
암스테르담에서 독일 베를린행 열차는 1개월 전 구매대행사인 Omio 앱을 통해 사전예매를 하였다. 예매 시 0637시 암스테르담 출발, 0834시 뒤스부르크 도착, 0910시 베를린행 환승 1315시 베를린 중앙역 도착으로 좌석 지정까지 받아 독일 철도청으로 부터 승차권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러나 출발 전 앱을 통해 열차시간을 확인하니 뒤스부르크에서 환승할 열차가 시간이 변경되어 우리가 도착이전인 0810시에 이미 뒤스부르크를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열차가 출발하고 조금 후에 열차 승무원이 검표를 하여 문의하니, 우리가 환승할 열차는 뒤스부르크 도착 시 이미 출발하여 못 타니, 그 시간에 함부르크를 경유하는 열차로 환승하라고 한다. 좌석배정은 환승한 열차의 승무원에게 다시 받으면 된다고 한다. 조금은 황당했지만 독일 열차운행의 잦은 변경에 대해 여행후기에서 읽어 본 적이 있어, 그런대로 이해하기로 하였다. 승차권 검표 후 뒤스부르크 도착 30여분 전쯤 열차의 다른 승무원(여성)이 우리 자리로 와 승차권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뒤스부르크에서 0810분에 출발하는 베를린행 열차가 45분여 연착되어 우리가 탈 수 있으니, 뒤스부르크역에 도착하여 10번 플랫폼에서 열차를 환승하라고 전해준다. 그래도 기억하고 전달해 준 승무원들이 고마웠다. 열차가 뒤스부르크역에 도착하고 해당 플랫폼으로 가니, 우리가 탈 베를린행 열차는 53분 연착되어 도착하였고, 큰 불편 없이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독일 고속열차 예매 승차권. 경유지 환승열차 시간과 플랫폼 번호까지 있다. 변동시 통보가 없어, 승차시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 상단에 Berlin+city 표시는 고속열차 이용시 도착 도시의 대중교통을 해당일 이용할 수 있다.


●포츠담 상수시 궁전
포츠담은 베를린 남서쪽에 있는 인구 18만여 명의 작은 도시로 베를린 중앙역에서 열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츠담회담은 1945년 5월 8일 이곳에서 열려 일본항복 후 전후처리와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기도 하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은 1747년 독일제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여름궁전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만든 로코코 양식의 건물이다. 인근에 있는 신궁전과 함께 상수시 정원은 포츠담 관광의 상징이 되고 있다. 상수시(Sanssouci)는 프랑스어로 '걱정이 없다' 라는 뜻이다.

포츠담 브란덴부르크문. 프리드리히 대제가 7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만들었으며, 베를린 것 보다 규모가작다
상수시 공원 정문
상수시 공원 후문
상수시 궁전
풍차가 있는 정원(Sizilianischer Garten)
상수시 궁전앞 공원. 신궁전으로 연결된다.
포츠담 시내

● 베를린 한인민박
포츠담 상수시 궁전 관광 후 베를린으로 전철 편으로 이동하여, 사전예약한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민박집으로 잘 알려진  한인민박에서 숙박하였다.

베를린 고급 주택지역에 위치한 한인민박 꽃보다 ~~~. 2층 발코니에 태극기가 있다.
꽃보다 할배 촬영시 이순재씨가 사용했던 침대. 민박집에 손님이 적어 여기를 배정해준다.
가족은 신구씨가 사용했던 침대를~~~
민박집 주인이 소개해준 지역 맛집에서 만찬을~~~ 가성비가 매우 좋았다.


● 베를린 관광
통일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인구 370여만 명으로 유럽연합 최대의 도시이다. 베를린의 주요 관광명소들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어, 도보로만 다닐 수는 없다. 베를린 관광을 위해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1일권(AB존) 티켓을 한인민박 근처 지하철역인 Bundesplatz역에서 구매하였다. 여기서 지하철을 이용 초역(동물원역)까지 이동하여 베를린 관광을 시작하였다. 초역을 기점으로 하는 100번, 200번 버스와 도심에서 연결되는 300번 버스는 베를린의 주요 관광명소를 연결해 주어, 시티투어버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베를린 관광 코스 : 1일 코스)
초역 - 카이저빌헬름 교회(도보 2분)-전승기념탑(버스 100번, 5분)-국회의사당, 브란덴부르크 문(버스 100번 3분)-유대인 학살 기념물(도보 5분)-체크포인트 찰리(버스 200번 3분)-이스트사이드 갤러리(버스 300번 20분)-박물관섬(버스 300번 10분)-초역(버스100번 15분)-Bundesplatz역(지하철 U Bahn 5분)-한인민박(도보 5분)
베를린 방문일이 월요일(5.29)이어서 대부분의 박물관이 휴관으로 관람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초역(동물원역). 인근에 베를린 동물원이 있다.

- 카이저빌헬름 교회
카이저빌헬름 교회는 1859년 기욤 2세에 의해서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1943년 연합군 집단포격으로 파괴되어,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파괴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함께 베를린의 랜드마크이다.

초역에서 조금 나오면 보이는 카이저빌헬름 교회
폭격에 의해 파괴된 모습이 처참하다.
현대식 건물들과 파괴된 교회의 부조화

- 전승기념탑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다. 탑 내부 285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으며, 브란덴부르크 문 등 베를린 전망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전승기념탑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전망대에서 본 브란덴부르크 문
전승기념탑 주변 광장의 비스마르크 상
브란덴부르크 문 부근에 있는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 뒤쪽에 커다란 돔이 있다.
국가 사회주의 희생자 추모 광장

-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179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건축하였으며, 냉전시 동서 베를린의 경계로 분단 독일의 상징이었다. 1989년 11월 10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하여 환희의 물결로 베를린 장벽의 해체를 지켜봤으며, 이후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 위 4두 마차는 나폴레옹에게 약탈되어 파리에 있었으나, 1841년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멀리 국회의사당 돔이 보인다.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에 있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 기념물

- 체크 포인트 찰리
동서 베를린 연합군 측 국경검문소이다. 냉전 당시 동서베를린 검문소는 알파(프랑스 관할), 브라보(영국 관할), 찰리(미국 관할) 등 3개소가 있었다. 독일 통일 후 1990년 모든 검문소가 철거되었으며, 2008년 미군 측 찰리 검문소가 실제 모습으로 재현되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체크 포인트 찰리. 사진은 당시 근무한 미군의 모습인 듯
체크 포인트 찰리 뒤편에서~~~ 앞쪽은 사진 대기자가 많다.

-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체크 포인트 찰리 관광을 마치고 인근중국 음식점에서 점심 및 잠시 휴식을 취한 후, 300번 버스를 타고 동서 베를린 장벽을 예술화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이동하였다. 총 161km에 이르던 동서 베를린 장벽은 대부분 해체되어 기념품 등으로 분산되었다. 현재는 1.3km의 장벽이 남아 있고,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 넣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에는 냉전해체전 1986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크의 양국 우정을 과시한  키스 장면과 전쟁이 없는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베를린의 명물이 되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벽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상징, 키스 장면. 소련과 동독의 공산당 서기장들의 우정의 키스(1986.4.21)이후 3년만에 베를린 장벽이 해체(1989.11)되며, 냉전시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슈프레 강.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옆을 흐른다.

- 박물관 섬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 가운데의 작은 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르가몬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구 박물관(Altes Museum, 그리스.로마 유물 박물관), 신 박물관, 보데 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박물관 섬이라고 부른다. 월요일에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휴관하여, 박물관 섬 광장(Lust Garten)에서 주변 경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베를린 돔. 베를린에서 가장 큰 교회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박물관 섬 입구에 있다.
구 박물관(Altes Museum) 앞 Lust Garten 에서 잠시 휴식을~~~
슈프레 강변 박물관

박물관 섬을 마지막으로 하루동안의 베를린 시내 관광을 마치고, 100번 버스를 탑승 초역으로 이동하여 지하철 편으로 한인민박으로 되돌아왔다. 베를린에서의 관광은 베를린 교통티켓 1일권으로 지하철(U Bahn), 지상전철(S Bahn), 버스(100, 200, 300번) 등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두루 이용하여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 베를린 ~ 바르샤바 국제열차
베를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가는 국제열차는 베를린 중앙역이나 게준트브렌넨역에서 하루에 수회 운행되며, 6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가 탄 열차는 게준트브렌넨역에서  0933시 출발하여, 1554시에 바르샤바 그단스크역에 도착하였다. 출발역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으니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한인민박이 있는 Bundesplatz 역에서 지상전철(S-Bahn 41)을 타고 게준트브렌넨역으로 간다.
게준트브렌넨역. 바르샤바 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바르샤바 가는 폴란드 국제열차
열차 내부 복도
6인실 객실로 미국인 2명, 폴란드인 1명, 우리 부부 등 5명이 탑승했다.

- 폴란드인의 자존심
6인 객실에 5명의 다국적인이 탑승하여 복잡하였다. 미국인 가족은 해군 전역자로 해군 근무 시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 있었으며, 한국 진해항에도 가본 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열차 운행 중간에 미국인 부부가 다른 좌석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때까지 말이 없던 폴란드인은 번역 앱을 통해 자신은 50대로 폴란드어와 독일어 밖에 몰라 미안하다고  하며, 한국을 알고 있다고 한다. 중간에 다시 정장을 한 폴란드인 젊은 청년이 옆좌석에 승차하였다. 청년은 노트북을 펼치고 작업을 계속하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였다. 한 참을 그렇게 통화하니 나도 약간은 거북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자 옆에 앉은 50대 폴란드인이 젊은 청년에게 무엇이라 말하고, 젊은 청년이 큰소리로 대꾸하면서 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대충 짐작으로 들어보니 50대가 젊은 청년에게 동양인 여행객들도 함께 있는데, 폴란드인으로서 자존심도 없이 객실 내에서 큰소리로 통화를 하느냐고 나무라는 것 같다. 처음에는 큰소리로 반발하던 청년도 50대의 조리 있는 설득에 이해를 하고, 우리에게도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고 조용히 있게 되었다. 50대 폴란드인은 바르샤바 도착 전 중간역에서 하차하면서 우리에게 좋은 여행을 하라며, 작별인사를 한다. 공중도덕을 중요시하고 외국인에게 배려심이 많은 폴란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폴란드 기찻길의 석양(바르샤바에서 루블린으로 가는 열차에서).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유럽 횡단 열차여행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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